# 005 시간을 달라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른다면 나는 당신에게 그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

나와 사랑을 시작할 거라면 그냥 나에게 이렇게 말 붙이면 되는 거다.

“넌 뭘 좋아해?

음, 난 TV를 크게 켜놓고 만화책 보는 시간이랑,

친구가 사준 창가 화분에서 떨어진 잎사귀들을 주워 유리컵에 담아두는 일이랑,

음,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을 좋아해. 너무너무 좋아해.”

아마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순간, 공중에서 새 한마리가 날아와

내 어깨에 내려앉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새는 내 귀에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됐어. 그녀가 침묵을 깨고, 이제 시작한거야. 축하한다구.”

나는 그렇게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습관을 이해하고, 당신의 갈팡질팡하는 취향들을 뭐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당신이 먹고 난 핫도그 막대를 버려주겠다며

오래 들고 돌아다니다가 공사장 모래 위에 이렇게 쓰는 것.

“사랑해.”

그러니 나에게 시간을 달라.

나에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

- 이병률 ‘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