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걸작 the accidental masterpiece : on the art of life, and vice versa
보나르는 연인이나 부부관계에서 최대치를 끌어낸 예술가의 전형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비극적이었을지 몰라도 결국 이런 관계에선 본인들 외엔 아무도 그 내막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단지 보나르가 마르트와 함께 살면서 생산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보나르가 단순히 공처가나 피해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마르트의 단점들을 수용했고 마르트의 증상은 갈수록 나빠졌지만 보나르는 그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었다. 어쩌면 예술가 특유의 무정함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22쪽) “세상을 향해 가끔 ‘엿 먹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 르윗이 헤세에게 말했다. “넌 그럴 권리가 있어. 생각하고 걱정하고 뒤돌아보고 망설이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상처받고 쉬운 방법을 찾고 몸부림치고 헐떡거리고 혼란스러워하고 가려워하고 긁고 더듬거리고 버벅거리고 투덜거리고 초라해하고 비틀거리고 덜거덕거리고 헤매고 걸고넘어지고 지우고 서두르고 비틀고 꾸미고 불평하고 신음하고 끙끙대고 갈고닦고 발라내고 허튼소리를 하고 따지고 트집 잡고 간섭하고 남에게 몹쓸 짓하고 남 탓하고 어슬렁대며 훔쳐보고 오래 기다리고 조금씩 하고 나쁘게 보고 남의 등이나 긁어 주고 탐색하고 폼 재고 앉아 있고 명예를 더럽히고 자신을 갉고 갉고 또 갉아 먹지 말라고. 다 멈추고 무조건 ‘하라’고.” (161쪽) 우리는 이것저것 물건들을 모으는데 그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그러니 이 물건들도 어쩌면 우리의 가족처럼 되었다. 그리고 애완동물이나 사람에게 그러듯 이런 물건들에도 애착을 갖게 된다. 샤르댕의 그림에 대해 쓴 작가들은 하나같이 그의 그림 속에 특정한 ‘가족’이 반복되어 등장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니까 컵과 냄비 가족이다. 그의 그림들을 계속보다 보면 친구를 알아보듯 이들을 알아보게 된다. (294쪽)